기호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사물로, 사물에서 풍경으로
- 참여 작가
- 임희윤, 최지희, 현가비
- 기간
- 2021.03.16 — 2021.03.28
- 관람 시간
- 13:30–19:00 · 월요일 휴무
- 기획
- 박소호
- 포스터 디자인
- 임희윤
- 장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6길 52-19, 예술공간 의식주
나가는 말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거나 기대되는 미래가 없을때, 나는 한 없이 먼 뒤를 돌이켜 본다”
보편적 동선. 포스터는 전시나 공연에서 일종의 전언으로, 깃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공간에 놓일 작품들의 예고편이며 기획을 대변하고 조력하는 요소에서 선봉의 좌표에 위치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참여작가들과 전시의 맥락에 대해 논의 하던 중 전시구조, 특히 그룹전 시가 가지는 보편적인 지점에 물음을 던졌다. 홍보를 통해 관람객을 확보한 다음 현장에서는 합의된 주제와 공동의 맥락을 통해 서문이 작성되어 비치된다. 관람객은 기획자와 작가가 구성한 동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게 되며, 나가는 문을 지나면 전시 감상은 마무리된다. 이번 기획에서 ‘의식주’는 시간상으로 전시가 시작되는 바로 첫 지점과 끝에 주목했고, 공간적으로 작품이 놓이는 좌표와 동선에 주목했다. 작가들과의 합의를 통해 사전 홍보된 포스터에는 전시의 정보만이 담겨있을 뿐 디자인요소는 없다. 오히려 완성된 결과물에서 정보 사이로 삽입된 것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이는 보편적으로 인지 해왔던 전시 진행구조의 순서와 좌표를 비틀어 ‘합의된 지시대명사’에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오브제와 도구에 담긴 기호를 지워가는 장치이다.
뒤엉키는 좌표 언어가 가지는 일종의 ‘보편성’을 독립적인 방향에서 보고자 하는 세 명의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작가들이 주목한 소재는 각각 땅굴, 계단, 전단으로 나뉜다. 자연 발생한 동굴과 다른 ‘땅굴’은 전시장 안에서 ‘불특정 다수의 땅굴’을 지칭하는 기록에 쫓기는 동시에 지워진다. 벽과 벽 사이에 바짝 붙어있는 조형물은 도구로서의 활용 가치가 없으며 계단 형태를 취하면서 시선의 상승과 하단을 유도한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계단’이라는 도구의 보편적 이동(수직 이동)을 유도하지 않고 공간의 거실과 방 사이에 있는 벽을 감싸면서 시선의 위치이동을 유도할 뿐이다. 관람객이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마지막 동선에는 포스터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는 전시에 관한 정보가 있다거나 본 전시를 은유하는 이미지가 없다. 동선의 끝에서 작가가 설정한 위치에 서거나 앉아야 온전한 이미지를 볼 수 있으며 종이 위에 인쇄된 큐알 코드를 통해서만 이번 전시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열람이 가능해진다.
기호에서 풍경으로 언어는 일종의 약속이다. 우리 앞에 수없이 놓인 물건들과 현상들에 이름을 부여하여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각각의 언어에는 수많은 사회관습과 체계들이 담겨 있으며 인류가 보는 것들에게 카테고리를 만들어낸다. 언어가 생겨나기 전 인류의 의사소통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영화 ‘굿-바이’에서 과거 의사소통 방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은 돌의 언어를 언급한다. 다양한 생김새의 돌 중에서 현재 자신의 마음과 가장 닮은 모양을 선택하여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롭다면 최대한 동그란 모양을, 그렇지 못하다면 가장 거친 것을 선택하는 단순한 원리이다. 초기의 언어는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언어를 그 초기언어와 비교해 본다면 매우 복잡한 원리와 장치로 발전되었다. 언어는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각자의 논리를 대변하면서 진화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설정된 질문과 설계된 장치를 통해 길들어져 있는 언어적 관습과 기호적 프레임을 스스로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시도를 한다. 전시가 이루어질 때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포스터와 캡션, 그리고 높이 변경을 가능하게 하는 ‘계단’이라는 도구, 마지막으로 좌표가 없는 ‘땅굴’이라는 공간 도구는 각각의 시공간에서 쌓인 역할과 프레임을 거부한다. 이는 세 명의 작가들이 주목하는 사물과 개념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무엇인가 발전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경직되고 굳어지는 무엇이 생기기 마련이다. 통상적인 구조와 보편적인 합의에 대해 반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통로를 찾기 위한, 혹은, 각자의 독립적인 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에 가깝다. ‘들어가는 말’ 보다는 ‘나가는 말’을 선택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보편성의 해체와 질문을 마주하기를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