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잔해
- 참여 작가
- 박희주
- 기간
- 2026.10.03(토) — 2026.10.18(일)
- 관람 시간
- 13:00–18:00 · 월, 화 휴무
- 장소
- 서울시 서대문구 홍연길 80, 2층 예술공간 의식주
- 기획 및 서문
- 박소호
- 주관·주최
- 예술공간 의식주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주체 지원사업
전시 서문
어떤 장소는 그곳을 떠난 뒤에도 남는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은 장소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나무가 드리웠던 그늘, 한때 눈에 들어왔던 색, 어디에서 보았는지 분명하지 않은 윤곽 같은 것들이 서로 떨어진 채 기억 속에 머문다. 우리는 때로 이 조각들을 고향이라 부른다.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이름이 가리키는 곳을 하나의 풍경으로 펼쳐 보이기는 어렵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돌아갈 곳의 모습 사이에는 빈자리가 있다.
박희주의 그림은 그 빈자리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닌 작가에게 집은 하나의 좌표를 넘어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로 확장되어 왔다. 관찰한 자연과 지나온 곳의 기억,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상상은 화면에서 서로의 일부가 된다. 그 과정에서 어떤 형상은 나무나 산처럼 보이다가도 다른 색과 윤곽에 붙어 낯선 모습을 얻는다. 익숙한 풍경을 알아보려는 순간, 시선은 그것을 이루는 불분명한 덩어리와 마주한다. 일부 작업에서 나타나는 덩어리 같은 형상은 이러한 만남을 들여다보게 한다. 식물인지 바위인지, 여러 생물이 엉겨 있는 것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 형태에는 서로 다른 감각이 밀집해 있다. 이 덩어리를 하나의 대상을 그린 결과보다 여러 이미지가 모여 생긴 상태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에서 떨어져 나온 장면, 일상에서 채집한 자연의 단서, 상상 속에서 변형된 윤곽이 가까이 붙고 겹쳐지며 부피를 얻는다. 풍경은 그렇게 뭉친 것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히토 슈타이얼은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에서 이미지를 무엇인가를 재현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세계에 속한 사물로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지는 욕망과 힘을 축적하고, 유통과 변형을 거치며 손상의 흔적을 지닌다. 그의 논의에서 잔해는 역사와 정치적 폭력의 충돌을 품는다. 이 관점은 회화의 표면에서도 이미지가 무엇을 닮았는지와 함께, 무엇을 겪으며 지금의 상태가 되었는지를 묻게 한다. 박희주의 작업을 이 질문 곁에 놓으면, 화면의 형상들은 장소를 가리키는 동시에 여러 시간을 통과하며 남은 이미지의 잔해로 읽힌다. 여기서 잔해라는 말은 한때 완전했던 원형을 반드시 전제하지 않는다. 직접 본 풍경과 전해 들은 장소, 이미 희미해진 기억과 뒤늦게 생겨난 상상은 처음부터 하나의 전체에 속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들 사이에서 친밀함을 느끼고, 그 친밀함을 고향이나 그리움이라는 말로 묶는다. 오래된 이름은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한곳에 머물게 하는 힘이 된다.
작업 〈팔레후아〉에서도 멀리 있는 장소에 대한 상상은 작가가 살아온 땅의 감각과 겹쳐진다. 가보지 않은 곳을 떠올리는 동안 이미 보았던 자연의 일부가 되돌아오고, 가까운 풍경에는 먼 장소의 이름이 내려앉는다. 어느 쪽이 이 그림의 본래 자리인지 결정하기는 어렵다. 화면은 두 장소 사이의 거리를 품은 채, 그 사이에서 생겨난 형상들을 모은다. 그리움의 대상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색과 형태는 오히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남는다. 이러한 응집은 재료가 만나는 과정에서도 일어난다. 장지 위에 놓인 색과 선은 물을 만나 스며들고 번지며 앞서 남겨진 흔적에 닿는다. 모노타이프의 전사와 안료의 중첩을 거치는 동안 어떤 부분은 옮겨지고, 어떤 부분은 빠지거나 다른 흔적에 덮인다. 작가는 이 변화를 살피며 다시 색을 더하고 형상을 이어간다. 화면에는 그려진 대상뿐 아니라 접촉과 이동, 기다림의 시간이 함께 쌓인다.
젖은 종이 위에서 서로 다른 흔적은 경계를 잃기도 하지만 완전히 같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겹쳐진 색 사이에는 밀도의 차이가 남고, 풀어진 윤곽 곁에는 또렷한 선이 머문다. 덩어리는 이 차이들을 품은 채 형성된다. 매끈하게 봉합된 전체보다, 여러 조각이 잠시 함께 붙어 있는 상태에 가깝다. 박희주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낯선 친밀함은 그 불완전한 결합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전시 《아주 오래된 잔해》는 이러한 덩어리들 앞에서 우리가 장소를 느끼는 방식을 돌아본다. 고향이라는 말에 꼭 들어맞는 하나의 풍경을 찾을 수 없어도, 그 이름 주위에 모인 감각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색으로 번지고 형상으로 엉기며 지금의 그림에 남는다. 관람객이 가져온 기억 또한 그 곁에 놓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숲으로 보이는 덩어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계절의 빛이나 잊고 있던 장소의 기척이 된다. 오래된 이름을 부를 때 돌아오는 것은 하나의 장소보다, 그 이름 아래 모여 있던 여러 이미지일 수 있다. 박희주의 작업은 그 이미지들이 다시 뭉치는 자리를 만든다. 서로 다른 시간의 잔해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이웃을 얻고,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풍경의 일부가 된다.
참고 문헌
Hito Steyerl, “A Thing Like You and Me,” e-flux journal, no. 15, April 2010.





